염원 설정자료1

1.
2002년 월드컵참가를위해 각국의 선수단이 조선으로 속속 모여들던 어는날 , 영종도 신공항에 미국선수단이 도착 입국수속을 밟던중
공항청사건물의 천장이 일부 무너져내리면서 미국선수단의 임원7명과 선수1명이 사망(그외 조선인 사상자다수)하는 불상사가발생.
피해자의 보상문제를 놓고 뒤숭숭하게 돌아가는 상황하에서 어영부영 월드컵개막식은 상암동 축구경기장에서 열린다.
그러나, 개회식 도중 경기장 지반이 내려앉으며, 경기장건물전체가 38’가량 기울어져, 많은관객과 일부VIP들이 죽거나 부상당했다.
(미국인21명 , 네덜란드인17명,프랑스인 10명, 그외 조선인사상자 다수 사망)
VIP중에는 달라이라마가 왼팔에 심한 찰과상을 입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개회식을 취소해야 했으나 형식과 체면을 중요시하는
조선월드컵 운영위원회는 개회식을 강행키로 결정,일부선수단과 임원들을 데리고 인근 고등학교 강당을 빌려 파행적인 개회식을
치뤄내고야 만다…. 이에 격분한 세계각국은 월드컵을 취소해야한다고 들고 일어났으나 또다시 어영부영 경기일정을 진행시켰다.
개막식을 치룬지 3일뒤 수원경기장에서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경기가 치뤄진후, 독일의 골키퍼 크라우젠 선수가 몸의 이상을 호소
진단결과 6.25전쟁이후 조선의 풍토병인 유행성출열혈로 밝혀저 FIFA는 더 이상 한반도내에서 경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
모든 경기일정을 일본으로 옮기게 된다.
다소 미흡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일본은 월드컵을 훌륭희 치뤄내어 국제사회의 칭송을 받게 되지만, 능력도 안되면서 쓸데없는 욕심을
부려 세계인의 축제를 망쳐버린 조선에게는 국제사회의 지탄이 쏟아졌다.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UN은 긴급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
남한을 테러지원국으로 규정,경제제재조치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고 남한을 UN에서 축출하기에 이르렀다.
월드컵기간중 가장큰 피해를 입은 미국,독일,네덜란드는 조선에 손해배상금(총액15조5천7백만불)을 일시불로 요구했다.

외국에 대해 원래 아무힘도 못쓰는 조선정부는, 쾌히 수락하면서, 노벨평화상 수상국가로써의 이미지관리를 철저히 잊지않았다.
(당연히 배상금은 전액 국민으로부터 수탈하고,대통령의 사금고에서는 한푼도 지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분노는 그 정도로는 삭혀지지 않았다.
세계모든 국가에서는 자국내에 거주하는 조선인 추방켐페인이 벌어졌다. 그나라의 시민권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혈통중에 35%가
조선인 혈통으로 밝혀지면 조선인으로 간주하고, 조선으로 강제 출국시켜  조선의 인구는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국제사회도 조금씩 이성을 찾기시작했다.
무조건적 탄압정책보다 두고두고 조선의 골수까지 빨아먹는게 이득이 될 것이란 판단을 하게되었다.
UN은 다시한번 안전보장이사회를 개최. 휴전선 이남지역을 신탁통치할 것을 결의(이조치로 말미암아 오히려 북조선의 침략위협을 확실하게 봉쇄할 수 있게 되었다)UN은 휴전선 이남지역을 세계공동소유의 경제,과학특구로 지정했다
먼저 경제특구로서의역할은 원주민들의 반강제적인 노동을 통해 얻어지는 재화를, 조선을 제외한 모든세계국가를 위한 비축물자 생산기지로 활용하는 것이다.
과학특구로서의 역할은 전인류가 추진하는 지놈프로젝트의 진전에 따라 인체,생체실험이 필요하게되자, 실험재료 공급지 겸, 인체실험연구지역으로서의 역할을 갖도록 한 것이다.
UN의 신탁통치 결정에 의해, 신탁통치위원회가 결성되어 서울 경복궁에 본부가 들어섬에 따라, 조선에는 몇가지 변화가 생겼다.
먼저 조선의 수도 서울은 신,통,위의 특별관리구역으로 지정, 조선인은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외국인 거주지로 바뀌었다.
서울에 거주할 수 있는 조선인은 형식만 남아있는 남한 정부의 3급이상의고급 공무원에 준하는 인사들과, 자산 100억이상의 재산가, 그밖에 서울시 관리를 위한 극소수의 관리인(주로 호남출신),경비를 위한 소수의 경찰병력(신,통결정이후, 남한의 군대는 해산되었다)정도로
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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